세계사 최대의 전투 : 모스크바 공방전세계사 최대의 전투 : 모스크바 공방전 - 4점
앤드루 나고르스키 지음, 차병직 옮김/까치글방

세계사 최대의 전투 모스크바 공방전이라는 제목을 달고 나온 이 책은 Andrew Nagorski의 The Greatest Battle: Stalin, Hitler, and the Desperate Struggle for Moscow That Changed the Course of World War II 의 한국어판입니다. 원서의 표지는 아마도 1941년 11~12월 사이의 모스크바의 모습인데 비해 한국어판의 표지는 스탈린, 히틀러, 그리고 KV 전차의 앞모습과 그 앞에 MOSCOW가 놓여 있는데 웹에서 아무거나 줏어쓴 사진이라 그런지 몰라도 KV는 실제로 사용한 형식이 아니라 45mm 전차포가 주포 옆에 붙어있는 시작형식이라는 것이 약간 마음에 걸리더군요.

책을 읽기 시작하자 불길한 예감은 바로 현실이 되었습니다. 저자인 Andrew Nagorski는 폴란드계 미국인 저널리스트로 냉전시대에 철의장벽 동쪽을 주제로 하는 넌픽션들로 나름 명성이 높았지만 직접적으로 군사사적 명성을 가지지 못한 저자들 - (비록 다른 저자들과 달리 앤터니 비버는 그나마 군사사적 시도를 하는 편이라지만) 리처드 오버리, 앤터니 비버, 바바라 터크만 - 이 군사 관련 저작을 쓰는 경우, 전쟁을 이해할 수 없었다는 바바라 터크만의 고백대로 글 자체의 문장력과 무관하게 주제로 삼았던 Battle을 자신의 글에 거의 녹여내지 못하거나 군사사적 연구 성과를 반영하지 못한다는 단점이 있는데 이 책 또한 그 수준을 벗어나지 못합니다.

12개 챕터 370페이지의 글에서 전투에 관해 묘사한 것은 30 페이지 정도에 불과하고, 그 수준 또한 군사사적 연구성과를 반영한다기 보다는 대조국전쟁사와 일부 독일 장군들의 회고록을 적당히 짜집기한 수준, 혹은 교전국의 전선에 남아있는 기자들이 자신이 본 것을 무의미하게, 혹은 인간적으로 서술하듯. 국가원수나 일부 장군들의 에피소드만을 나열하는 수준인데다 특히나 최악의 시나리오와 그 이후로 이어지는 참혹한 승리는 중간에 아주 많은 글들이 놓여 있어야 할 것 같은데도 서술이 휙휙 날아다니는 문제를 더하면 어떠한 사전지식없이 이 책을 통해 모스크바 전투의 그림을 그려보겠다는 시도는 뭐랄까 임진록을 놓고 임진왜란의 실상을 이해하라는 것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 뒤에 찬사를 가득 붙여준 사람들의 의도나 지성이 의심스러울 정도였습니다.

물론 전투기록을 무의미하게 나열하는 것 또한 전쟁사, 혹은 군사사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반증일 수 있겠지만 Military History나 Battle이라는 이름을 붙여놓고 상황을 제대로 해석하지 못한 채 에피소드를 무의미하게 나열하는 것 또한 Military History에 대한 몰이해를 반영하는 것 같아 아쉬운 느낌이 있다고 하는 것이 보다 명확한 서술일 것입니다. 뭐랄까 Amazon.com의 서평란에 어느 독자가 붙여준 제목 그대로 "세계사 최대의 전투에 대한 정치적 배경The political background to the greatest battle"으로 제목을 바꾸는 편이 훨씬 나았을 것 같더군요.

이제 이 책의 번역에 대해 이야기할 시점인 듯 합니다. 번역서 최고의 덕목은 외국어를 한국말로 매끄럽게 바꿔주는 것이겠습니다만 이 책과 같은 사회과학의 요소가 들어있는, 팩트를 전달하는 영역의 번역서라면 그에 못지않게 지켜야 할 룰이 있습니다. 바로 용어와 고유명사 표기의 정확성과 일관성이지요. 가능하다면 원어식 발음에 가까울 것...도 있겠네요. 물론 번역 자체는 역자의 프로필에 걸맞게 나쁘지 않은 수준입니다만 관련된 군사용어에 대한 지식의 부족이 사실의 전달에 혼동을 주는 경우를 종종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가령 355페이지를 보자면 1942년 7월 12일 레닌그라드 남쪽에 있는 볼호프 전선에서 제2돌격대를 지휘하던 블라소프가 독일군에 체포되었다.....고 기술하고 있는데 이는 실제로는 볼호프 전선군Волховский фронт 예하의 제2충격군2 Ударная армия을 지휘하던 안드레이 안드로비치 블라소프Андрéй Андрéевич Влáсов가 레닌그라드 해방을 시도하기 위한 작전을 벌이다 실패로 돌아가고 이 과정에서 제2충격군이 포위되고 1942년 7월 12일 독일군에 포로로 잡힌 사건이지요. 그 외에도 여러가지 오류를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다는 점에서 적절한 감수를 거쳤다면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이제 결론을 내리죠. 만일 독자께서 모스크바 전투에 걸친 정치적 반응들을 보고 싶다면 이 책은 괜찮은 선택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책을 통해 모스크바 전투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싶으셨다면 그리 좋은 선택이 아닐 듯 합니다. 우마왕은 군사사적인 제목을 가졌지만 실제로 군사사적인 느낌을 주지 못하는 서술을 했다는 점에서 별 둘, 나쁘진 않지만 적절하지 못한 번역을 했다는 점에서 별 셋 정도를 주는 걸로 마무리하겠습니다.

http://sagebooks.tistory.com2012-04-26T11:18:560.3410
Posted by 우마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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