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차르트 - 전4권 세트 크리스티앙 자크 지음, 성귀수 옮김/문학동네

맨 처음 접했던 크리스티앙 자크의 책은 1997년 말 이집트의 파라오, 람세스 2세의 일대기, 람세스다. 아버지이자 굳건한 파라오인 세티를 만나는 광경으로 시작한 이 저작은 고대 이집트를 배경으로 세티의 배우자이자 현명한 어머니로 한 점 꿀림이 없었던 이집트 왕비 투야, 우정으로 람세스를 도왔던 그의 친구들, 아메니, 아샤, 셰타우, 모세, 그리고 람세스의 여인들 이제트와 네페르타리, 그리고 람세스의 적으로 등장했던 여러 인물들 - 람세스의 교만한 형 셰나르와 누나 돌란테, 히타이트왕 하투실, 그 왕비 푸투헤파. 그렇게 람세스가 만난 실존한 인물과 가공의 인물들이 교차하며 각자의 매력과 개성을 뽐내고, 그 속에서 람세스의 재능을 성장시키는 세티의 가르침과 그 가르침을 바탕으로 성장하여 왕자로, 서기관으로, 장교로, 섭정공을 거쳐 파라오로 성장하여 마침내 이집트와 파라오를 넘어서 적조차 감탄시키는 전설이 되어버린 이집트의 황금 시대를 만든 람세스 2세의 발자취가 만화경처럼 눈 앞에 선연히 펼쳐지는 것 같은 문자의 매력을 부정할 수 있는 자가 과연 얼마나 되었을까?

물론 글로 보여진 람세스의 모습이 역사 그대로는 아니었으리라. 당시 이집트의 모습이 글에 그려졌던 천국이나 축제의 낙원도 아니었으리라... 하지만 읽는 사람을 감동으로 이끌고, 비록 한 때에 지나지 않았다 해도 이 동쪽 구석의 나라에 이집트 열풍을 만들어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그 뒤로도 크리스티앙 자크는 3천년전 고대 이집트를 배경으로 재능을 갖고 있던 인물들이 그 속에서 성장하고 자라며 달인이 되는 이야기(빛의 돌)를, 혹은 왕조의 교체속에서 갈등하고 부딪히며 끝내 꺾이지만 기억에 남는 인물의 이야기(태양의 여왕)를 써내며 이렇게 이집트를, 이집트 문명을 한국인들의 기억속에 심어왔다.

그러했던 크리스티앙 자크가 들고 나온 새로운 소설의 테제는 천재음악가 볼프강 아마데우스(고트프리) 모차르트다. 글의 무대도 크리스티앙 자크가 주로 쓰던 고대 이집트에서 3천년의 시간을 뛰어넘은 근세의 유럽을 그 무대로 하고 있다. 아마도 크리스티앙 자크가 모티브를 얻은 것은 모차르트의 마지막 대작 오페라, Die Zauberfloete(魔笛:마술피리)의 파격일 것이다. 이전의 다른 오페라에 비해 비기독교적 색채가 강한 이 오페라는 모차르트가 프리메이슨이었다는 증거로 인용되기도 하는데 크리스티앙 자크도 그 부분에 촛점을 맞춘 듯 하다. 보다 명확히 말하자면 모차르트의 예술적 천재성은 그 자신의 천재성을 바탕으로 아버지인 레오폴트의 교육에 못지 않게 고대 이집트의 비전에 영향을 받았다는 것이 크리스티앙 자크의 주장이다.

소설은 모차르트의 삶을 날짜별로 추적해나가며, 몇 날 몇 시에 그가 무엇에서 영감을 받아 어떤 음악을 작곡했으며, 그의 여정이 어떠했는지를 꼼꼼히 기록해 나간다. 동시에 토트의 서, 연금술의 궁극을 배우고 이집트의 헤르메스 수도원에서 탈출, 대마법사를 찾아내라는 사명을 받은 이집트인 타모세가 모차르트를 이끌고 프리메이슨으로 이끄는 과정을, 그리고 이집트의 비전에 빠져든 모차르트가 세상을 깨우는 천재적인 음악을 만들어내는 과정을 기술해간다.

하지만 이 책은 불행히도 모차르트에 대해 전혀 모르는 초보자가 읽기엔 그다지 바람직하지 않다. 다시 말해 모차르트와 그의 음악들에 대해 어느 정도의 지식을 갖고 있는 독자에겐 어느 음악이 어떤 의도에서 만들어졌다는 것을, 그것이 이집트 비전의 영향을 받았던 것인가...라고 회상하며 즐길 수 있지만 모차르트의 음악에 대해 전혀 알고 있지 못한 사람에겐 좀 딱딱하다. 이는 아마도 모차르트가 너무나 유명한, 교과서를 시작으로 워낙 많이 접하지만 그 정보만으로는 모차르트를 파악하기 어렵다는 것을 상기해보자. 더욱이 모차르트의 모습을 강렬하게 정형화한 미디어가 있다. 아마도 1984년에 개봉된 영화,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다. 그 원작인 섀퍼의 연극에서 그려졌던 대로 경박하고 꾸밈없는, 동시에 순진한, 뭐랄까 자기만의 세상속에 빠져있는 천재의 전형적인 모습으로 그려진 모차르트 말이다. 하지만 크리스티앙 자크의 책은 경박한 천재라는 모차르트에 대한 선입견과 달리 깊이 있고 노력하는 모습이 보이는, 즉 달인으로 성장해가는 모습을 보이는 모차르트를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문제가 있다.

또 하나의 문제점은 크리스티앙 자크가 일대기 형태의 성장 이야기를 잘 쓴다는 점에 있다. 성장하는 이야기를 마주친 독자, 혹은 청자는 다음 두가지를 기대한다. 대상의 천재성을 발견한 이전 세대의 누군가에 의해 그 천재성이 개화되도록 교육받고, 그 교육속에서 노력하며 한계와 편견을 극복하여 마침내 스스로의 능력으로 세상을 이끄는 그런 존재로 성장하는 모습을 기대한다. 하지만 이런 스토리가 어울리지 않는, 비록 그의 음악은 시대를 뛰어넘어 지금까지, 그리고 앞으로도 살아남겠지만 현실의 질고를 벗어나지 못한 채 지독한 시기와 모략의 대상이 되어 버린 채 끝나버린 현실에서의 모차르트의 삶은 성장 스토리의 구도와는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다. 때문에 성장스토리적인 감동을 바랬던 독자에겐 카타르시스를 주지 못하는 이 소설이 굉장히 답답할 수 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모차르트에 대해 알고 싶은 사람이라면 한 번쯤 이 소설을 읽어볼 것을 권하고 싶다. 물론 나는 모차르트의 실체가 아마데우스에서 그려낸 경박한 천재였는지, 이 책에서 그려낸 대로 이집트 비전에 입문한 천재이자 달인이었는가에 대해 평가하지는 않겠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모차르트의 진실에 대한 또 하나의 가능성 높은 시각을 볼 수 있다는 것에는 충분한 의의가 있는 책이라 생각한다. 최소한 그가 처했던 삶의 상황이 어떤지에 대해서 생각해볼 기회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Posted by 우마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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