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격전의 전설전격전의 전설 - 10점 칼 하인츠 프리저 지음, 진중근 옮김/일조각

2008년이 시작되지마자 일조각에서 "전격전의 전설"이라는 이름으로 "Blitzkrieg legende"의 한국어판을 내놓았습니다. "Blitzkrieg legende : Der Westfeldzug 1940"는 1996년, 독일 연방군 산하의 MGFA(Militärgeschichtliches Forschungsamt : 군사사 연구소쯤으로 번역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에서 편찬한 Operationen des Zweiten Weltkrieges(2차대전기 작전들) 시리즈의 두번째로 나온 책으로 1940년 5~6월 독일군의 프랑스침공작전에 대해 다루고 있는 책입니다.

저자인 칼 하인즈 프리저 (Karl-Heinz Frieser) 독일연방군 육군 대령은 보병장교로 임관한 후 뷔르츠부르크Wurzburg 대학에서 정치학과 역사학을 전공했으며 1981년에 박사학위를 취득, 3년간 기계화보병중대장으로 복무한 후 1985년부터 MGFA의 사회과학부 연구원으로 현재 제1.2차 세계대전 연구부의 책임자를 맡고 있습니다. 지난 2006년 4월에는 Ardennen, Sedan: Militärhistorischer Führer durch eine europäische Schicksalslandschaft를 출간했고, 작년 9월에는 MGFA의 제2차 세계대전 준 공간사, Das Deutsche Reich und der Zweite Weltkrieg (독일과 제2차세계대전 시리즈) 시리즈 제8권, Die Ostfront 1943/44: Der Krieg im Osten und an den Nebenfronten (동부전선 1943/44: 동부와 측면전선에서의 전쟁)을 공저 출간한 바 있습니다. (준 공간사라고 표기하는 이유는 현재의 독일 연방군(Bundeswehr)이 독일 국방군(Wehrmacht)를 계승하지 않았다고 밝히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번에 번역된 "Blitzkrieg legende : Der Westfeldzug 1940"는 제목 그대로 각국에서 기동전의 모범적 사례로 널리 교육되고 있는 1940년 5~6월, 독일의 침공전을 다룬 책입니다. 1940년 프랑스 전역을 다룬 책이나 다큐멘터리라는 것들이 워낙 많았던지라, 도대체 새로운 책이 나올 수 있긴 한가 하는 의문을 갖게 하기에 충분했지요. 사실 MGFA가 보여줬던 강력한 포스는 이 책에도 충분한 가치가 있을 거라는 기대감을 높여줬지만 다른 시각으로 보자면 해당 영역을 다룬 MGFA의 또다른 저작, Das Deutsche Reich und der Zweite Weltkrieg 시리즈 제2권, Die Errichtung der Hegemonie auf dem europäischen Kontinent[유럽 대륙의 헤게모니 장악]가 준 실망감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발간 기간의 한계 때문이었는지 기존의 저작들을 벗어날 수준은 아니었거든요. 어쨌건 주먹구구로 고민해봐야 답은 나오지 않는 법, 독일 아마존에 과감히 주문했습니다.

독일 아마존에서 도착하자마자 풀어본 이 책의 포스는 과연 엄청났습니다. 1940년 5~6월 프랑스 및 서부유럽 전역의 실상과 그 실제적인 이유를 날카롭게 분석함으로서 독일군이 승리한 것은 어떤 치밀한 작전계획, 나아가 전격전이라는 새로운 개념의 전술을 채용해서가 아님을, 나아가 전격전이란 통념 자체가 실제론 허구에 불구함을 밝히는 날카로운 분석을 선보였던 것이죠. 군데군데 박힌 컬러풀한 지도가 전황의 이해에 더욱 도움이 되었음은 물론입니다.

하지만 단점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스당의 패배 이후 가믈랭이 언급한, "숫적 열세, 장비의 열세, 전술의 열세"에서 숫적 열세, 장비의 열세는 사실이 아니었음을 밝히는 과정에서 조금 억지스러운 부분이 있습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독일군의 장비는 연합군과 동등하거나 약간의 열세 수준이었는데도 장비의 절대적 열세..로 보일 수 있는 분석은 조금 문제가 된다고 봅니다. 그러나 이러한 단점을 감안해도 전반적인 가치만으로 판정하라면 군사사에 관심있으신 분에게는 절대적으로 추천할만한 저작입니다. 한 마디로 "이 책을 읽어보지 않은 자, 감히 1940년 프랑스 전역을 논하지 말라!"... 수준의 저작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인상대로 이 책이 남긴 반향이 꽤 컸는지 2003년 3월에는 일본의 中央公論新社에서 "電撃戦という幻(전격전이라는 환상)"(상권), (하권)이라는 제목으로 일본어판이, 2005년 10월에는 미국의 Naval Intitute Press에서 Blitzkrieg legend: The 1940 Campaign in the West라는 제목으로 영문판이 나왔습니다. 비교와 보충을 위해 지른 영문판이 도착하고 내용에 대한 전반적인 그림이 머릿속에서 그려질 무렵인 2006년 초반, 일조각에서 한국어판이 나온다는 소식이 들렸습니다. 반가운 마음도 들었습니다만 그걸 번역하는 사람이 현역 군인이라고 하더군요. 그 때문에 한편으론 번역의 퀄리티에 대한 일말의 우려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해가 바뀌고 책을 보았습니다.

걱정한 것보다는 번역문이 매끄럽고, 특별한 전문용어를 제외하면 눈에 띄는 오류를 찾기가 힘들었습니다. 굳이 문제삼고 싶은 표현이라면 173페이지부터 등장하는 클라이스트 기갑군이란 표현입니다. 정확한 표현은 클라이스트 기갑집단이고, 이후 내용은 이 클라이스트 기갑집단이 기갑군으로 인정받지 못했기 때문에 벌어지는 문제들을 다루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후 전개될 내용과 상치되는 표현인 클라이스트 기갑군으로 쓴 것이 조금 아쉽더군요.

또 하나 문제삼을 만한 것은 표지입니다. 퀄리티는 매우 고급스럽습니다만 이 시기에 쓰이지 않은 장포신형 4호전차가 표지를 차지한 것은 다소 아쉽습니다. 책의 내용에 맞게 초기형 4호전차가 나왔거나 슈투카가 나왔으면 어떨까 싶은 아쉬움이 있네요.

그외 눈에 띄는 단점이라면 38,000원에 달하는 가격이겠습니다. 다소 비싸게 생각되긴 합니다만 독일어판을 구하려면 42 유로, 영문판으로는 (아마존 할인을 걸고) 42달러가 소요되니 한글로 된 이 책을 구매하는 것이 경제적으로도 이득이겠습니다.

아울러 한국의 실정에서 또 하나 우려되는 것이 있습니다. 국내에선 기존의 시각을 잘 정리한 서부전역 전사책이 없었기 때문에 이 책으로 깰 수 있는 기존의 통념조차 형성되지 않은 척박한 환경입니다. 문제조차 제시되지 않은 환경에서 해답이 나와 버린 상황이랄까요? 때문에 이 저작이 가진, 역사적 군사사적 심도를 알아보기가 쉽지 않을 거 같다는 우려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어찌 이 책이 책임질 일이겠습니까? 결론적으로 별 다섯에 다섯개를 주고 싶은 절대적으로 강력히 추천할만한 저작입니다.

 
Posted by 우마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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