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의 포성8월의 포성 - 8점 바바라 터크먼 지음, 이원근 옮김/평민사

2008년 9월, 평민사가 내놓은 8월의 포성은 바바라 터크먼 여사가 1962년에 발표한 The Guns of August 의 한국어판입니다. Guns of August는 퓰리처 상에 빛나는 제1차세계대전의 개설서답게 몇 번이나 재간을 반복한 이 책이 나온지 거의 반세기가 다 되어서야 한국에 소개된 것이 조금 아쉽긴 하지만 말입니다.

The Guns of August는 "서부 유럽인의 시각으로 본" 제1차 세계대전의 발발과정과 개전 이후 1달간의 전투양상에 대한 실감나는 소개라고 정리할 수 있을 듯 합니다. 인간은 자신의 경험과 인지에 비춰 세상을 봅니다. 물론 제1차세계대전이 일어나게 만들었던 궁극적인 원인들은 대부분 발칸의 실타래처럼 얽힌 (그래서 지금도 풀리지 않는) 문제들에서 출발합니다만 자신의 나라와 직접적으로 관계가 없는 것 처럼 보이던 사건들이 얽히면서 자신의 나라를 전쟁으로 휘몰아 정신을 차리고 보니 전쟁의 한복판에 서 있게 된 서부 유럽인들의 입장에서 본 제1차 세계대전 첫달의 모습이란 이야기죠. 따라서 The Guns of August는 퓰리처 상에 빛나는 제1차 세계대전에 대한 서유럽적 시각의 소개서일지는 몰라도 균형잡힌 시각에 기반한 제1차 세계대전에 대한 소개를 제공하지는 못하는, 약간 발을 저는 저작이라 하겠습니다. 제1차세계대전의 원인은 물론이고 전황을 양방향에서 균형있게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 서유럽 지역에만 집중했다는 점에서 분명한 한계를 안고 있는 저작이란 이야깁니다. 뭐랄까 보다 삐딱한 시각으로 보자면 히틀러 북과 유사하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만 이 책은 보이지 않는 부분을 생략했을지언정 사실을 왜곡하진 않았다는 점에서 히틀러 북과는 다릅니다. 아마도 그 차이는 독자가 일반 대중인가, 강철의 대원수 개인에 대한 보고서냐의 차이였겠지만 말입니다.

이러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이 책의 가치는 충분합니다. 1910년 영국 국왕 에드워드 7세의 장례식으로 시작한 이 책은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할 19세기말, 20세기 초부터 축적된 서유럽 각국의 정치적, 외교적 긴장과 주요 열강들의 전시계획, 베를린과 파리, 런던을 중심으로 모스크바와 브뤼셀 사이에서 급박하게 돌아가는 며칠 동안의 외교전, 그리고 마침내 제1차 세계대전이 개전된 이후 8월 한달의 전쟁 양상들을 각국의 시각을 살려 담아낸, 당대의 유럽인들이 맛보았을 그 느낌을 담아낸 역작이기 때문입니다. 전황에 대한 실감나는 문장은 마치 Antony Beevor의 Stalingrad: The Fateful Siege, 1942-1943를 보는 느낌 - 아니 8월의 포성이 더 먼저 나왔으니 이렇게 비교하긴 좀 그렇습니다만 말이죠. - 이었습니다.

이제 이 책의 번역에 대해 이야기할 시점인 듯 합니다. 번역서 최고의 덕목은 외국어를 한국말로 매끄럽게 바꿔주는 것이겠습니다만 이 책과 같은 사회과학의 요소가 들어있는, 팩트를 전달하는 영역의 번역서라면 그에 못지않게 지켜야 할 룰이 있습니다. 바로 용어와 고유명사 표기의 정확성과 일관성이지요. 가능하다면 원어식 발음에 가까울 것...도 있겠네요. 이 책은 문장 번역은 비교적 매끄럽습니다만 역자에게 데닝 밀러가 없었다는 점은 조금 아쉽습니다. 프랑스, 독일, 러시아는 물론 유럽과 신대륙을 종횡무진으로 넘나드는 지명, 인명이 오직 영어식 발음, 그것도 굉장히 어색하게 쓰였다는 것이 굉장히 눈에 거슬립니다. 다행히 터크먼 여사의 원문이 그렇게 전문적이지 않아서 용어상의 오류는 적었다는 점이 그나마 위안이 될까요? 원문에 별 넷 반, 번역에 별 셋 반. 합쳐서 별 넷 정도로 평하겠습니다.
http://sagebooks.egloos.com2008-10-01T10:43:350.3810
Posted by 우마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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