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련전차군단 도감소련전차군단 도감 - 6점
우에다 신 그림, 사이키 노부오 글, 장민성 옮김/이미지프레임(길찾기)

익히 알려져 있듯 소련이 붕괴되기 전까지 수 십년 간 독-소 전쟁의 연구는 본질적으로 매우 제한적이었죠. 무엇보다도 냉전이라는 거대한 장벽때문에 관련 당사국의 원 사료에 대한 접근이 극히 제한되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념적 문장으로 가득찬 대조국전쟁사를 통해 전쟁의 진실을 찾는다는 것은 근본적으로 어려운 일이었고, 독일의 문서고들이나 여러 회고록들은 상대적으로 접근이 용이했다고 말해지긴 합니다만 1990년대 이전에는 일반 독자들이 읽을 수 있는 저작을 내놓을 대중사가들 또한 독일의 문서고들에 접근한다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일부 문서고 자료들은 기밀로 묶여 있었으며 이 시기 소련측 출판물은 역사적 사실보다는 정권의 안위를 위한 선전에 사용되던 경향이 강했으니까요.

하지만 1991년 소련이 붕괴되면서 상황이 바뀝니다. 동시에 제2차 세계대전 50주년을 맞아 기밀로 묶여있던 문서고 자료들의 접근 또한 가능해졌죠. 그러나 접근이 가능해졌다는 것이 반드시 즉각적인 연구로 이어지지는 않죠. 특히나 러시아의 경우엔 원사료에 접근이 가능하더라도 이념, 접근성, 언어 등의 어려움 때문에 역사적 사실을 추적하기가 쉽지 않죠. 결국 저작들에 진실을 밝혀내는 진지하고 숙련된 시도가 구체적으로 반영되려면 시간이 필요했고, 그런 저작들은 1990년대 중반에 이르러서야 하나 둘 대중에게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이 말은 이 시기 이전에 발간된 관련 저작들에는 어느 정도, 혹은 정도 이상의 잘못된 선입견을 만들고 있었다고 보는 것이 옳다는 이야기입니다.

때문에 2000년 이전에 일본에서 발간된 동부전선 관련 저작들은 일단 매의 눈으로 다시 한 번 짚어볼 필요가 있는데, 해외저작의 번역물이 아닌, 일본 국내의 저작이라면 더더욱 조심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불행히도 이 책의 원저는 어떻게 보자면 붉은 군대에 대한 환상이 가장 크게 반영되었던 시기인 1998년도에 발간되었습니다. 1990년대 후반까지의 시각에선 이 책에 담긴 정보의 수준이 나쁘지 않다고 평가할 수 있지만 2000년대도 이미 12년이나 지난 지금의 시각에서 이 책의 정보는 현재의 시점에선 매우 올드한, 혹은 제법 부정확하다는 이야기입니다. 저자인 사이키 노부오씨가 여는 글을 통해 밝힌 '기획입안을 한 다카누키 노부히토씨가 "일본에서는 그쪽으로 책이 없었기에 본 서는 입문서이자 전문서이기도 하니까 그리 알고 하시도록"'이라거나 '테마인 소련전차군단은 너무나도 방대한데다 자료마저 부족해서 고심했습니다.'라는 이야기를 쓰게 된 배경이기도 하지요.

특히나 텍스트로 이뤄진 소련전차군단의 전투는 이러한 구식화된 자료가 갖는 한계가 여지없이 드러난 부분입니다. 당시 가용한 자료가 부족했던 것이란 점은 이해할 수 있지만 그것이 현 시점에선 구식화된 정보라는 것에는 변함이 없지요. 물론 개론 형식의 책에서는 시각이나 정보의 올드함이 큰 문제가 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이 책이 다루는 소재인 제2차 대전기의 독-소전쟁은 그 십 몇 년 사이에 밝혀진 정보의 양과 질적인 면에서 상당한 진전이 일어난 영역(경우에 따라서는 새로 업데이트 된 정보들로 인해 과거 인과관계가 완전히 잘못 해석되어 왔음이 밝혀진 경우도 있죠.)인데다 이 책이 다루는 주제 또한 제2차 세계대전의 거시적 접근이 아니라 제2차 세계대전을 통해 소련 전차, 나아가 전차군단이 보여준 모습들을 소개하기 위한 목적으로 쓰여졌기 때문에 올드한 정보를 통해 그 실상을 말하기에는 5~10% 쯤 부족하다고 보는 게 옳다는 이야기입니다.

전반적인 번역수준은 나쁘지 않습니다. 아니 나름 훌륭하죠. 하지만 원서의 한계에 더해 용어의 선정에도 다소간 아쉬운 부분이 남습니다. 아마도 편제 및 제대의 운용 차이에 대한 지식 부족 때문이라 생각되지만 베어마흐트의 Panzer / Panzergrenadier Divisionen과 소련의 танковый корпус 사이의 차이를 무시하고 - 심지어 표지의 띠지에는 독일 기갑군단과 소련 전차군단으로 표기하고 있음에도 - 전차사단/군단으로 혼용표기하고 있다는 점이나 (특히 지도상의) 몇몇 지명이 원어라기 보단 일본어의 영향을 받아 오기된 부분들이 보인다는 점은 다소 아쉽게 생각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초심자가 소련 전차군단의 개략을 살펴보기 위한 수단으로선 그럭저럭 나쁘지 않습니다. 단지 이 책을 키워질의 소스로 쓰는 만용을 부리지 않겠다는 점을 명심하면 말이죠.


http://sagebooks.tistory.com
2012-06-02T15:01:420.3610
Posted by 우마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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