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련전차군단 도감소련전차군단 도감 - 6점
우에다 신 그림, 사이키 노부오 글, 장민성 옮김/이미지프레임(길찾기)

익히 알려져 있듯 소련이 붕괴되기 전까지 수 십년 간 독-소 전쟁의 연구는 본질적으로 매우 제한적이었죠. 무엇보다도 냉전이라는 거대한 장벽때문에 관련 당사국의 원 사료에 대한 접근이 극히 제한되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념적 문장으로 가득찬 대조국전쟁사를 통해 전쟁의 진실을 찾는다는 것은 근본적으로 어려운 일이었고, 독일의 문서고들이나 여러 회고록들은 상대적으로 접근이 용이했다고 말해지긴 합니다만 1990년대 이전에는 일반 독자들이 읽을 수 있는 저작을 내놓을 대중사가들 또한 독일의 문서고들에 접근한다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일부 문서고 자료들은 기밀로 묶여 있었으며 이 시기 소련측 출판물은 역사적 사실보다는 정권의 안위를 위한 선전에 사용되던 경향이 강했으니까요.

하지만 1991년 소련이 붕괴되면서 상황이 바뀝니다. 동시에 제2차 세계대전 50주년을 맞아 기밀로 묶여있던 문서고 자료들의 접근 또한 가능해졌죠. 그러나 접근이 가능해졌다는 것이 반드시 즉각적인 연구로 이어지지는 않죠. 특히나 러시아의 경우엔 원사료에 접근이 가능하더라도 이념, 접근성, 언어 등의 어려움 때문에 역사적 사실을 추적하기가 쉽지 않죠. 결국 저작들에 진실을 밝혀내는 진지하고 숙련된 시도가 구체적으로 반영되려면 시간이 필요했고, 그런 저작들은 1990년대 중반에 이르러서야 하나 둘 대중에게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이 말은 이 시기 이전에 발간된 관련 저작들에는 어느 정도, 혹은 정도 이상의 잘못된 선입견을 만들고 있었다고 보는 것이 옳다는 이야기입니다.

때문에 2000년 이전에 일본에서 발간된 동부전선 관련 저작들은 일단 매의 눈으로 다시 한 번 짚어볼 필요가 있는데, 해외저작의 번역물이 아닌, 일본 국내의 저작이라면 더더욱 조심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불행히도 이 책의 원저는 어떻게 보자면 붉은 군대에 대한 환상이 가장 크게 반영되었던 시기인 1998년도에 발간되었습니다. 1990년대 후반까지의 시각에선 이 책에 담긴 정보의 수준이 나쁘지 않다고 평가할 수 있지만 2000년대도 이미 12년이나 지난 지금의 시각에서 이 책의 정보는 현재의 시점에선 매우 올드한, 혹은 제법 부정확하다는 이야기입니다. 저자인 사이키 노부오씨가 여는 글을 통해 밝힌 '기획입안을 한 다카누키 노부히토씨가 "일본에서는 그쪽으로 책이 없었기에 본 서는 입문서이자 전문서이기도 하니까 그리 알고 하시도록"'이라거나 '테마인 소련전차군단은 너무나도 방대한데다 자료마저 부족해서 고심했습니다.'라는 이야기를 쓰게 된 배경이기도 하지요.

특히나 텍스트로 이뤄진 소련전차군단의 전투는 이러한 구식화된 자료가 갖는 한계가 여지없이 드러난 부분입니다. 당시 가용한 자료가 부족했던 것이란 점은 이해할 수 있지만 그것이 현 시점에선 구식화된 정보라는 것에는 변함이 없지요. 물론 개론 형식의 책에서는 시각이나 정보의 올드함이 큰 문제가 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이 책이 다루는 소재인 제2차 대전기의 독-소전쟁은 그 십 몇 년 사이에 밝혀진 정보의 양과 질적인 면에서 상당한 진전이 일어난 영역(경우에 따라서는 새로 업데이트 된 정보들로 인해 과거 인과관계가 완전히 잘못 해석되어 왔음이 밝혀진 경우도 있죠.)인데다 이 책이 다루는 주제 또한 제2차 세계대전의 거시적 접근이 아니라 제2차 세계대전을 통해 소련 전차, 나아가 전차군단이 보여준 모습들을 소개하기 위한 목적으로 쓰여졌기 때문에 올드한 정보를 통해 그 실상을 말하기에는 5~10% 쯤 부족하다고 보는 게 옳다는 이야기입니다.

전반적인 번역수준은 나쁘지 않습니다. 아니 나름 훌륭하죠. 하지만 원서의 한계에 더해 용어의 선정에도 다소간 아쉬운 부분이 남습니다. 아마도 편제 및 제대의 운용 차이에 대한 지식 부족 때문이라 생각되지만 베어마흐트의 Panzer / Panzergrenadier Divisionen과 소련의 танковый корпус 사이의 차이를 무시하고 - 심지어 표지의 띠지에는 독일 기갑군단과 소련 전차군단으로 표기하고 있음에도 - 전차사단/군단으로 혼용표기하고 있다는 점이나 (특히 지도상의) 몇몇 지명이 원어라기 보단 일본어의 영향을 받아 오기된 부분들이 보인다는 점은 다소 아쉽게 생각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초심자가 소련 전차군단의 개략을 살펴보기 위한 수단으로선 그럭저럭 나쁘지 않습니다. 단지 이 책을 키워질의 소스로 쓰는 만용을 부리지 않겠다는 점을 명심하면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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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6-02T15:01:420.3610
Posted by 우마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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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 최대의 전투 : 모스크바 공방전세계사 최대의 전투 : 모스크바 공방전 - 4점
앤드루 나고르스키 지음, 차병직 옮김/까치글방

세계사 최대의 전투 모스크바 공방전이라는 제목을 달고 나온 이 책은 Andrew Nagorski의 The Greatest Battle: Stalin, Hitler, and the Desperate Struggle for Moscow That Changed the Course of World War II 의 한국어판입니다. 원서의 표지는 아마도 1941년 11~12월 사이의 모스크바의 모습인데 비해 한국어판의 표지는 스탈린, 히틀러, 그리고 KV 전차의 앞모습과 그 앞에 MOSCOW가 놓여 있는데 웹에서 아무거나 줏어쓴 사진이라 그런지 몰라도 KV는 실제로 사용한 형식이 아니라 45mm 전차포가 주포 옆에 붙어있는 시작형식이라는 것이 약간 마음에 걸리더군요.

책을 읽기 시작하자 불길한 예감은 바로 현실이 되었습니다. 저자인 Andrew Nagorski는 폴란드계 미국인 저널리스트로 냉전시대에 철의장벽 동쪽을 주제로 하는 넌픽션들로 나름 명성이 높았지만 직접적으로 군사사적 명성을 가지지 못한 저자들 - (비록 다른 저자들과 달리 앤터니 비버는 그나마 군사사적 시도를 하는 편이라지만) 리처드 오버리, 앤터니 비버, 바바라 터크만 - 이 군사 관련 저작을 쓰는 경우, 전쟁을 이해할 수 없었다는 바바라 터크만의 고백대로 글 자체의 문장력과 무관하게 주제로 삼았던 Battle을 자신의 글에 거의 녹여내지 못하거나 군사사적 연구 성과를 반영하지 못한다는 단점이 있는데 이 책 또한 그 수준을 벗어나지 못합니다.

12개 챕터 370페이지의 글에서 전투에 관해 묘사한 것은 30 페이지 정도에 불과하고, 그 수준 또한 군사사적 연구성과를 반영한다기 보다는 대조국전쟁사와 일부 독일 장군들의 회고록을 적당히 짜집기한 수준, 혹은 교전국의 전선에 남아있는 기자들이 자신이 본 것을 무의미하게, 혹은 인간적으로 서술하듯. 국가원수나 일부 장군들의 에피소드만을 나열하는 수준인데다 특히나 최악의 시나리오와 그 이후로 이어지는 참혹한 승리는 중간에 아주 많은 글들이 놓여 있어야 할 것 같은데도 서술이 휙휙 날아다니는 문제를 더하면 어떠한 사전지식없이 이 책을 통해 모스크바 전투의 그림을 그려보겠다는 시도는 뭐랄까 임진록을 놓고 임진왜란의 실상을 이해하라는 것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 뒤에 찬사를 가득 붙여준 사람들의 의도나 지성이 의심스러울 정도였습니다.

물론 전투기록을 무의미하게 나열하는 것 또한 전쟁사, 혹은 군사사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반증일 수 있겠지만 Military History나 Battle이라는 이름을 붙여놓고 상황을 제대로 해석하지 못한 채 에피소드를 무의미하게 나열하는 것 또한 Military History에 대한 몰이해를 반영하는 것 같아 아쉬운 느낌이 있다고 하는 것이 보다 명확한 서술일 것입니다. 뭐랄까 Amazon.com의 서평란에 어느 독자가 붙여준 제목 그대로 "세계사 최대의 전투에 대한 정치적 배경The political background to the greatest battle"으로 제목을 바꾸는 편이 훨씬 나았을 것 같더군요.

이제 이 책의 번역에 대해 이야기할 시점인 듯 합니다. 번역서 최고의 덕목은 외국어를 한국말로 매끄럽게 바꿔주는 것이겠습니다만 이 책과 같은 사회과학의 요소가 들어있는, 팩트를 전달하는 영역의 번역서라면 그에 못지않게 지켜야 할 룰이 있습니다. 바로 용어와 고유명사 표기의 정확성과 일관성이지요. 가능하다면 원어식 발음에 가까울 것...도 있겠네요. 물론 번역 자체는 역자의 프로필에 걸맞게 나쁘지 않은 수준입니다만 관련된 군사용어에 대한 지식의 부족이 사실의 전달에 혼동을 주는 경우를 종종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가령 355페이지를 보자면 1942년 7월 12일 레닌그라드 남쪽에 있는 볼호프 전선에서 제2돌격대를 지휘하던 블라소프가 독일군에 체포되었다.....고 기술하고 있는데 이는 실제로는 볼호프 전선군Волховский фронт 예하의 제2충격군2 Ударная армия을 지휘하던 안드레이 안드로비치 블라소프Андрéй Андрéевич Влáсов가 레닌그라드 해방을 시도하기 위한 작전을 벌이다 실패로 돌아가고 이 과정에서 제2충격군이 포위되고 1942년 7월 12일 독일군에 포로로 잡힌 사건이지요. 그 외에도 여러가지 오류를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다는 점에서 적절한 감수를 거쳤다면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이제 결론을 내리죠. 만일 독자께서 모스크바 전투에 걸친 정치적 반응들을 보고 싶다면 이 책은 괜찮은 선택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책을 통해 모스크바 전투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싶으셨다면 그리 좋은 선택이 아닐 듯 합니다. 우마왕은 군사사적인 제목을 가졌지만 실제로 군사사적인 느낌을 주지 못하는 서술을 했다는 점에서 별 둘, 나쁘진 않지만 적절하지 못한 번역을 했다는 점에서 별 셋 정도를 주는 걸로 마무리하겠습니다.

http://sagebooks.tistory.com2012-04-26T11:18:560.3410
Posted by 우마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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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한국전쟁 - 8점
임영대 지음/소와당

"청소년을 위한 파닥파닥 세계사 교과서"
를 냈던 임영대씨가 한국전쟁을 주제로 새 책을 냈습니다. "이데올로기의 색안경을 걷어내고 본 전쟁현장의 팩트, 그 자체"라는 부제, 혹은 서술문이 붙어있는 이 책은 한국 간행물 윤리위원회의 "2010년 우수저작 및 출판지원사업"의 교양부문 당선작(10권)이기도 하며 "6.25전쟁에 대한 사전지식이 부족한 청소년 및 성인을 대상으로 저술된 역사교양서다. 1945년 해방이후 남북 간 대립에서 전쟁 발발, 휴전협정 때까지의 과정을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고 있다. 6.25전쟁을 필자의 성향을 배제하고 사실 그대로 전달하려는 시도가 엿보이며 여러 예화 및 사진․도표 자료 등을 통해 독자들의 흥미와 재미를 더하고 있다."는 평이 붙어 있습니다.

그래서 실물을 처음 봤을 때의 기분은 솔직히 약간 당황스러웠습니다. 뭐랄까 서지정보에서 받은 인상으로는 저자의 전작인 "청소년을 위한 파닥파닥 세계사 교과서" 이나 박태균씨의 "한국전쟁" 같은 느낌일 것이라 생각 했는데 실물로 본 첫 인상은 마치 오스프리의 캠페인 시리즈 비슷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오스프리 캠페인이 앞서 들었던 저작에 비해 나쁘다는 이야기는 물론 아닙니다. 어떤 깊이있는 연구를 전개하기엔 부족한 것은 사실입니다만 하나의 전투를 개괄적으로 훑어보기엔 괜찮은 저작이거든요. 그러나 오스프리 시리즈들은 대부분 하나의 주제를 추적하기엔 무리가 있습니다. 하나의 주제, 즉 어떤 전쟁이나 그외 기타등등을 전반적으로 살펴보기엔 한권 한권이 너무 얇습니다. 사실 하나의 전투를 제대로 상술하기에도 충분한 수준은 아니란 한계를 갖는다는 이야깁니다. 그리고 이것은 본 저작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문제점입니다. 즉 하나의 전투를 상술하기에도 모자란 지면으로 3년에 걸친 한국전쟁의 기승전결을 조망한다는 것이 쉽지 않다는 이야기죠.

더욱이 이 책의 제목에는 한국 전쟁에 더해 (전략 + 전술 + 무기)라는 부제가 붙어 있습니다. WW2 처럼 무기의 발전에 따라 시기마다 다종다양한 전략, 전술, 무기의 변화를 볼 수 있는 수준은 아니지만 한국 전쟁 또한 시기에 따라 전략, 전술, 무기의 변화 - 물론 변화의 원인은 무기 자체의 발전 보다는 참전국가의 변화가 더 크겠습니다만 - 가 있고 이 또한 한정된 지면하에서 전쟁 그 자체의 양상변화를 서술할 공간을 잡아먹어 이도 저도 아닌 결과물을 만들 수 있다는 우려가 있는데 실제로도 무기에 관한 설명은 T34 vs 퍼싱, 보병화기 일부, 포 일부, 인천상륙작전에 참가한 함선, 미그 vs 세이버 정도로 구색 맞추기에 불과한데다 포의 경우 개별 무기에 대한 사진이나 그림 조차 제대로 붙어있지 않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또한 "이데올로기의 색안경을 걷어내고 본 전쟁현장의 팩트, 그 자체"라는 부제 비슷한 서술 또한 약간의 문제가 있습니다. 전선 전체에 대한 조망에 이어 부분적으로 중요한 전투를 다루고 있기는 한데 이 전투들이 전쟁 자체의 양상변화에 기여한, 즉 전쟁 전반의 관점에서 볼 때 즁요한 전투들을 소개한 것이 아니라 전쟁 전반으로 보면 중요도가 떨어지더라도 그저 "한국측이 이긴" 전투만을 부각했다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물론 이것은 저자의 성향이나 저자의 집필 역량이 부족해서 생긴 문제라기 보다는 근본적으로 한정된 지면에 이거저거 때려넣다 보니 생긴 문제, 다시 말해 출판사의 기획역량이 부족, 아니 부재했기 때문에 생긴 일이라고 보는 쪽이 옳을 거 같습니다. 본 저작보다 지면이 좀 더 여유가 있었던 박태균씨의 "한국전쟁" 또한 세부 디테일이 부족하다는 비평을 들었던 것을 생각해보면 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문제만 있다는 것은 아닙니다. 세부적으로 아쉬운 점이 있긴 하지만 한국전쟁이라는 3년간에 걸친 전쟁을 개괄적으로 훑어보겠다는 생각으로 살펴보기엔 나쁘지 않은 책이라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정리하자면 이 책은 한국전쟁에 대한 어떤 지적 자극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수단이라기엔 조금 모자란 것이 사실입니다. 그렇긴 하더라도 제한된 지면에 이만큼이나마 한국전쟁이라는 3년간에 걸친 전쟁을 설명하려 시도했다는 점은 적절히 평가될 필요가 있기도 합니다. 따라서 심도에서 아쉬운 면이 있긴 하지만 내용에선 별 넷을 주겠습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한정된 지면에 이거저거 때려넣다 어정쩡하게 만들어버렸다는 점에서 디자인에는 별 하나를 주겠습니다.

http://sagebooks.tistory.com2010-08-15T09:39:280.3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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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세계대전사1차세계대전사 - 10점
존 키건 지음, 조행복 옮김/청어람미디어

2009년 3월 9일, 청어람에서 존 키건의 The First World War의 번역서, 1차세계대전이 발간되었습니다. The Guns Of August(번역서), The First World War (번역서)에 이어 제1차 세계대전을 다룬 세번째 책이지요. 저자 존 키건은 영국의 군사사학자이자 저널리스트로 1971년 Barbarossa: invasion of Russia, 1941를 시작으로 다수의 저작을 냈으며 전쟁의 얼굴, 정보와 전쟁, 2차세계대전사등 적지 않은 저작들이 한국어로 번역되어 있기도 합니다.

키건의 The First World War는 2000년에 발간된 제1차 세계대전의 개괄을 다룬 책입니다. 이 책은 마찬가지로 제1차 세계대전을 다룬 국내 출간작인 피터 심킨스, 제프리 주크스, 마이클 히키의 공저, 모든 전쟁을 끝내기 위한 전쟁 처럼 구조적인 - 즉 오스프리의 엣센셜 히스토리로 발간된 책들 - The First World War (1) : The Eastern Front 1914–1918, The First World War (2) : The Western Front 1914–1916, The First World War (3) : The Western Front 1917–1918, The First World War (4) :The Mediterranean Front 1914–1923을 각 챕터로 삼음으로서 실질적으론 제1차 세계대전의 전체적인 그림을 그려내기 위해선 별도의 수고가 필요하다는 - 문제에 부딪히지 않고 제1차 세계대전의 흐름을 전체의 시각에서 시간과 상황의 경과에 따라 전반적으로 조망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반면에 모든 전쟁을 끝내기 위한 전쟁은 상대적으로 각각의 주제를 비주얼하게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으니 키건의 1차세계대전사로 뼈대를 잡고 모든 전쟁을 끝내기 위한 전쟁을 보조적으로 보면 제1차 세계대전을 입체적으로 이해하는데 더욱 도움이 될 것입니다.

또한 세계대전의 개괄을 다룬, 키건의 전작이라 할 수 있는 2차세계대전사와 비교해보더라도 전작의 소재가 워낙 복잡한 전쟁이었던지라 키건의 필력으로도 세부에서 불만이 없지 않았던 - 비록 키건이 제시한 서술 방향을 알고 있다 하더라도 조금은 산만한 느낌이 없지 않다거나 독-소전이 너무 빈약하게 다뤄졌다는 문제가 있는 - 책인데 비해 이 책은 제1차 세계대전이라는 큰 사건을 폭넓게 개괄하면서도 전쟁의 경과를 군더더기없이 깔끔하게 잘 서술하고 있습니다.

리차드 오버리의 독재자들등을 번역한 바 있는 조행복님의 번역도 큰 문제없이 잘 되었습니다만 개인적인 불만을 표하자면 아마도 편집쪽의 문제일 듯 한데 전쟁사를 다룬 책임에도 불구하고 부대명에서 기수와 서수 표현을 구분하지 않았다는 점이나 하드커버의 재킷을 영문판처럼 비주얼한. 깔끔한 재킷이 아니라 마치 폭이 좀 더 넓은 띠지처럼 감아놓은 재킷은 좀 불만스러웠습니다.

그런 점을 제외한다면 별 다섯중 넷 반 정도 주고 싶은 좋은 책이라 평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제1차 세계대전에 대해 알고 싶을 때 한권만 보고 싶다면 어떤 책을 보면 되겠냐는 질문에 대해 별 부담없이 이 책을 봐라...라고 할 수 있는 책이 번역된 점이 마음에 듭니다. 2차세계대전사는 그런 점에선 조금 아쉬웠거든요.
http://sagebooks.tistory.com2009-03-25T11:43:120.31010
Posted by 우마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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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인류최초의 인류 - 10점 앤 기번스 지음, 오숙은 옮김/뿌리와이파리
지난주 토요일(2008년 10월 25일)에 뿌리와 이파리에서 나온 Ann Gibbons의 The first Human: The Race to Discover Our Earliest Ancestors의 한국어판, 최초의 인류가 서점에 풀렸습니다. 아니 지난 토요일에 발견했다고 해야겠군요. (2008년 10월 24일 발매라고 쓰여 있다는 것을 상기해주세요) 2006년 4월 18일에 영어판이 처음 발간되었으니 발매 시기는 평균과 약간 빠른의 사이...정도라 할 만 하려나요?

사실 이 나라에서 "최초의 인간(류)"이라거나 "인류의 기원"이라는 단어는, "이름은 확실히 모르겠어요. 공룡 이름들을 외우는 건 불가능한 일이거든요. 10살이 넘어가면 누구라도 그 이름들을 외우지 못할 거예요."라는 Jurassic Park의 세리프를 굳이 떠올리지 않더라도 이런 책이나 저런 책처럼 어린이를 위한 주제로 생각되는 게 현실입니다. 물론 그 복잡한 라틴어를 기억하기엔 이 나라 사람들의 삶이 좀 팍팍하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작 인류의 기원에 대한 논제를 다룬 제대로 된 한글로 쓰인 책(저작이건, 역서건)을 찾아 보면 그 또한 단 한 권도 없다는 것 역시 피해갈 수 없는 사실입니다. (이래놓고 인문계의 위기 어쩌고 해봐야 우습죠.) 물론 아주 없다고 할 수는 없겠습니다만 앞서 소개한대로 어린이 대상 책이거나 옛날에 나온 책인 경우가 많아서 상세가 두리뭉실인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사이언스"지의 진화 담당기자였던 Ann Gibbons가 쓴 The first Human : The Race to Discover Our Earliest Ancestors는 바로 이 이야기를 다룹니다. 하지만 그 고인류가 출토된 지층의 시기, 즉 지구상에 출현한 것으로 생각되는 시기를 기반으로 구성하던 종래의 다른 책들과 달리 이 책은 화석들이 실제로 발견된 연대를 기준으로, 다시 말해 그 화석을 발굴한 사람들의 이야기까지 담아 소개합니다. 때문에 어느 시점에서 어느 이론이 들어왔고, 기존에 있던 개념을 어떻게 침몰시켰으며 논란의 중심이 된 것은 어떤 이유로 논란이 된 것인가 까지도 쉽게 소개할 수 있었습니다. 따라서 호미닌에 대한 지식이 없던 사람들에겐 지식의 뼈대를, 기존의 책들에서 소개된 호미니드에 대한 토막나 있던 지식을 가졌던 사람들에겐 지식의 체계를 부여해줍니다. 무엇보다 이 책에서 강조하고 싶은 가치는 이런 첨예한 논란을 다루는 책들이 흔히 빠지기 쉬운 편향성을 배제하려는 노력입니다. 필자가 이러한 첨예한 논란을 벌이는 집단들과 접촉해서 그들의 도움을 얻어야 하는 경우, (마치 한국 기자들이 흔히 그러한 것 처럼) 필자 자신에게 편의를 제공한 사람들에게 좀 더 호의적인 시각으로 기술한다거나 필자 자신이 이해하지 못하는 주장과 마주치면 일단 반대편에게 불리하게 기술한 것이 아니라 이 주제는 어떤 이유로 논란이 있다고 소개한다거나 하는 식으로 최대한 공정함과 객관성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특히 인상적이었습니다.

단점이라면 역시 한 권에 너무 많은 것을 넣으려 하다 보니 정작 논의의 중심에서 비켜나 보이는 것들에 대한, 즉 상대적으로 새로운 종에 대한 언급이 상대적으로 적다는 것이지만 제목이 시사하는 집필 방향을 볼 때 어쩔 수 없는 한계인 듯 합니다.
이제 번역에 대한 이야기를 할 시점인 듯 합니다. 늘 말해왔듯 번역서 최고의 덕목은 외국어를 한국말로 매끄럽게 바꿔주는 것이고 이 책과 같은 과학의 요소가 들어있는, 팩트를 전달하는 영역의 번역서라면 용어와 고유명사 표기의 정확성과 일관성(가능하다면 원어식 발음에 가까울 것...도 있겠네요. )이겠습니다만 그간 옛날, 아주 옛날의 주제를 다뤄왔던 뿌리와 이파리의 역서답게 아주 적절한 번역을 보여줍니다.

전반적으로 별 네개 반 정도를 주고 싶습니다. 인류의 기원에 대해 관심이 있으셨던 분은 꼭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http://sagebooks.tistory.com2008-10-21T03:59:330.31010
Posted by 우마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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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의 포성8월의 포성 - 8점 바바라 터크먼 지음, 이원근 옮김/평민사

2008년 9월, 평민사가 내놓은 8월의 포성은 바바라 터크먼 여사가 1962년에 발표한 The Guns of August 의 한국어판입니다. Guns of August는 퓰리처 상에 빛나는 제1차세계대전의 개설서답게 몇 번이나 재간을 반복한 이 책이 나온지 거의 반세기가 다 되어서야 한국에 소개된 것이 조금 아쉽긴 하지만 말입니다.

The Guns of August는 "서부 유럽인의 시각으로 본" 제1차 세계대전의 발발과정과 개전 이후 1달간의 전투양상에 대한 실감나는 소개라고 정리할 수 있을 듯 합니다. 인간은 자신의 경험과 인지에 비춰 세상을 봅니다. 물론 제1차세계대전이 일어나게 만들었던 궁극적인 원인들은 대부분 발칸의 실타래처럼 얽힌 (그래서 지금도 풀리지 않는) 문제들에서 출발합니다만 자신의 나라와 직접적으로 관계가 없는 것 처럼 보이던 사건들이 얽히면서 자신의 나라를 전쟁으로 휘몰아 정신을 차리고 보니 전쟁의 한복판에 서 있게 된 서부 유럽인들의 입장에서 본 제1차 세계대전 첫달의 모습이란 이야기죠. 따라서 The Guns of August는 퓰리처 상에 빛나는 제1차 세계대전에 대한 서유럽적 시각의 소개서일지는 몰라도 균형잡힌 시각에 기반한 제1차 세계대전에 대한 소개를 제공하지는 못하는, 약간 발을 저는 저작이라 하겠습니다. 제1차세계대전의 원인은 물론이고 전황을 양방향에서 균형있게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 서유럽 지역에만 집중했다는 점에서 분명한 한계를 안고 있는 저작이란 이야깁니다. 뭐랄까 보다 삐딱한 시각으로 보자면 히틀러 북과 유사하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만 이 책은 보이지 않는 부분을 생략했을지언정 사실을 왜곡하진 않았다는 점에서 히틀러 북과는 다릅니다. 아마도 그 차이는 독자가 일반 대중인가, 강철의 대원수 개인에 대한 보고서냐의 차이였겠지만 말입니다.

이러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이 책의 가치는 충분합니다. 1910년 영국 국왕 에드워드 7세의 장례식으로 시작한 이 책은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할 19세기말, 20세기 초부터 축적된 서유럽 각국의 정치적, 외교적 긴장과 주요 열강들의 전시계획, 베를린과 파리, 런던을 중심으로 모스크바와 브뤼셀 사이에서 급박하게 돌아가는 며칠 동안의 외교전, 그리고 마침내 제1차 세계대전이 개전된 이후 8월 한달의 전쟁 양상들을 각국의 시각을 살려 담아낸, 당대의 유럽인들이 맛보았을 그 느낌을 담아낸 역작이기 때문입니다. 전황에 대한 실감나는 문장은 마치 Antony Beevor의 Stalingrad: The Fateful Siege, 1942-1943를 보는 느낌 - 아니 8월의 포성이 더 먼저 나왔으니 이렇게 비교하긴 좀 그렇습니다만 말이죠. - 이었습니다.

이제 이 책의 번역에 대해 이야기할 시점인 듯 합니다. 번역서 최고의 덕목은 외국어를 한국말로 매끄럽게 바꿔주는 것이겠습니다만 이 책과 같은 사회과학의 요소가 들어있는, 팩트를 전달하는 영역의 번역서라면 그에 못지않게 지켜야 할 룰이 있습니다. 바로 용어와 고유명사 표기의 정확성과 일관성이지요. 가능하다면 원어식 발음에 가까울 것...도 있겠네요. 이 책은 문장 번역은 비교적 매끄럽습니다만 역자에게 데닝 밀러가 없었다는 점은 조금 아쉽습니다. 프랑스, 독일, 러시아는 물론 유럽과 신대륙을 종횡무진으로 넘나드는 지명, 인명이 오직 영어식 발음, 그것도 굉장히 어색하게 쓰였다는 것이 굉장히 눈에 거슬립니다. 다행히 터크먼 여사의 원문이 그렇게 전문적이지 않아서 용어상의 오류는 적었다는 점이 그나마 위안이 될까요? 원문에 별 넷 반, 번역에 별 셋 반. 합쳐서 별 넷 정도로 평하겠습니다.
http://sagebooks.egloos.com2008-10-01T10:43:350.3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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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틀러 북히틀러 북 - 6점 헨릭 에벨레.아티아스 울 지음, 윤종상 옮김/루비박스

2008년 가을 루비박스에서 Das Buch Hitler. Kommentierte Ausgabe의 한국어판, 히틀러 북을 내놨습니다. 원어판이 2005년 3월, 영문판이 2006년 11월에 나왔으니 제법 빨리 번역된 셈이지요. 발매 시기를 볼 때 해당 저작도 소위 히틀러 최후의 2주를 다룬 영화, der Untergang이 불러온 후폭풍 정도로 나온 것 아닐까 싶습니다.

"히틀러 전속 부관의 심문기록을 토대로 작성된 스탈린만을 위한 NKVD의 비밀문서"라는 수식은 이 책이 히틀러에 관한 가장 자세하고 정확한 사실을 언급하고 있다고 선언하는 것처럼 착각하게 만들기에 충분합니다. 그 증언자가 히틀러의 부관인 오토 귄셰와 비서였던 하인츠 링게라면 더더욱 그렇지요. 더욱이 "링게와 귄셰는 잘못되거나 부정확한 얘기를 하지 않기 위해 조심해야만 했다. 그렇지 않을 경우 다음 날 끌려 나가 고문을 당해야 했기 때문이다. 또, 그들은 독방에 수감되어 있었기에 서로 입을 맞추거나 방어 전략을 짤 수가 없었다. 두 사람은 목숨을 담보로 진실을 공개해야 했다."라는 식의 보도자료는 이 책이 히틀러에 대한 숨겨진 진실을 말하고 있는 것 처럼 선언합니다. 따라서 히틀러라는 역사적 인물과 제2차세계대전이라는 역사적 사실에 별다른 지식을 갖지못한 일반적인 독자들이 이 책의 보도자료를 접하는 순간, 이 책이 히틀러, 그리고 그와 뗄 수 없는 제2차 세계대전에 대한 진실을 이야기할 것이라는 기대를 한껏 부풀리게 만듭니다.

하지만 히틀러북은 드러나지 않은 사실을 담고 있을지는 몰라도 공평한 시각의 진실을 담고 있다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무엇보다도 이 책이 강철의 대원수에게 보여지기 위한 보고서였다는 것을 잊어선 안될 일이겠지요. 편집자 서문에서 언급한 대로 1933년의 장면들은 개작되어 있으며 소비에뜨가 마침내 전쟁의 주도권을 쥐게 된 1943년 7월 이전의 전황 또한 스딸린, 나아가 소비에뜨의 입맛에 맞도록 생략되거나 윤색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소비에뜨의 제2차세계대전 공식전사인 대조국전쟁사의 서술방향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스딸린 치하 소비에뜨 정권은 후세, 혹은 국민들이 제2차 세계대전을 이렇게 바라봐주길 바랬다." 였다고 할 수 있을까요? 다시 말해 이 책은 제2차 세계대전에 대한 진실을 바라볼 수 있는 수단으로 기대하고 있다면 별 의미가 없는 책입니다만 히틀러 개인에 관한 숨겨진 에피소드를 살펴보는 데엔, 요아힘 페스트(Joachim Fest)의 Der Untergang: Hitler und das Ende des Dritten Reiches. Eine historische Skizze(번역판 : 히틀러 최후의 14일 )이나 Hitler. Eine Biographie(번역판 : 히틀러 평전 1, 히틀러 평전 2)와 비교하면서 읽는다면 재미를 더할 수 있는 저작이라 생각됩니다.

이제 번역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 할 듯 합니다. 번역서 최고의 덕목은 외국어를 한국말로 매끄럽게 바꿔주는 것이겠습니다만 이 책과 같은 사회과학의 요소가 들어있는, 팩트를 전달하는 영역의 번역서라면 그에 못지않게 지켜야 할 룰이 있습니다. 바로 용어와 고유명사 표기의 정확성과 일관성이지요. 가능하다면 원어식 발음에 가까울 것...도 있겠네요. 그러나 이 책은 이러한 룰을 그다지 지키지 않습니다. 역자께서는 "만연체 문장의 전형을 보여주며 극적인 순간들조차 다큐멘터리같은 필체로 일관한다. 독자 입장에선 상당한 도전이 될 것" 이라 말하고 있습니다만 정확성과 일관성이 떨어지는 용어와 고유명사의 표기는 독자의 도전에 더 큰 짐을 올려놓는다 할 일입니다. 원작에는 별 세개반정도를 번역엔 별 두개 반을 주고 싶네요.

http://sagebooks.tistory.com/62008-09-19T11:12:180.3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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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격전의 전설전격전의 전설 - 10점 칼 하인츠 프리저 지음, 진중근 옮김/일조각

2008년이 시작되지마자 일조각에서 "전격전의 전설"이라는 이름으로 "Blitzkrieg legende"의 한국어판을 내놓았습니다. "Blitzkrieg legende : Der Westfeldzug 1940"는 1996년, 독일 연방군 산하의 MGFA(Militärgeschichtliches Forschungsamt : 군사사 연구소쯤으로 번역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에서 편찬한 Operationen des Zweiten Weltkrieges(2차대전기 작전들) 시리즈의 두번째로 나온 책으로 1940년 5~6월 독일군의 프랑스침공작전에 대해 다루고 있는 책입니다.

저자인 칼 하인즈 프리저 (Karl-Heinz Frieser) 독일연방군 육군 대령은 보병장교로 임관한 후 뷔르츠부르크Wurzburg 대학에서 정치학과 역사학을 전공했으며 1981년에 박사학위를 취득, 3년간 기계화보병중대장으로 복무한 후 1985년부터 MGFA의 사회과학부 연구원으로 현재 제1.2차 세계대전 연구부의 책임자를 맡고 있습니다. 지난 2006년 4월에는 Ardennen, Sedan: Militärhistorischer Führer durch eine europäische Schicksalslandschaft를 출간했고, 작년 9월에는 MGFA의 제2차 세계대전 준 공간사, Das Deutsche Reich und der Zweite Weltkrieg (독일과 제2차세계대전 시리즈) 시리즈 제8권, Die Ostfront 1943/44: Der Krieg im Osten und an den Nebenfronten (동부전선 1943/44: 동부와 측면전선에서의 전쟁)을 공저 출간한 바 있습니다. (준 공간사라고 표기하는 이유는 현재의 독일 연방군(Bundeswehr)이 독일 국방군(Wehrmacht)를 계승하지 않았다고 밝히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번에 번역된 "Blitzkrieg legende : Der Westfeldzug 1940"는 제목 그대로 각국에서 기동전의 모범적 사례로 널리 교육되고 있는 1940년 5~6월, 독일의 침공전을 다룬 책입니다. 1940년 프랑스 전역을 다룬 책이나 다큐멘터리라는 것들이 워낙 많았던지라, 도대체 새로운 책이 나올 수 있긴 한가 하는 의문을 갖게 하기에 충분했지요. 사실 MGFA가 보여줬던 강력한 포스는 이 책에도 충분한 가치가 있을 거라는 기대감을 높여줬지만 다른 시각으로 보자면 해당 영역을 다룬 MGFA의 또다른 저작, Das Deutsche Reich und der Zweite Weltkrieg 시리즈 제2권, Die Errichtung der Hegemonie auf dem europäischen Kontinent[유럽 대륙의 헤게모니 장악]가 준 실망감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발간 기간의 한계 때문이었는지 기존의 저작들을 벗어날 수준은 아니었거든요. 어쨌건 주먹구구로 고민해봐야 답은 나오지 않는 법, 독일 아마존에 과감히 주문했습니다.

독일 아마존에서 도착하자마자 풀어본 이 책의 포스는 과연 엄청났습니다. 1940년 5~6월 프랑스 및 서부유럽 전역의 실상과 그 실제적인 이유를 날카롭게 분석함으로서 독일군이 승리한 것은 어떤 치밀한 작전계획, 나아가 전격전이라는 새로운 개념의 전술을 채용해서가 아님을, 나아가 전격전이란 통념 자체가 실제론 허구에 불구함을 밝히는 날카로운 분석을 선보였던 것이죠. 군데군데 박힌 컬러풀한 지도가 전황의 이해에 더욱 도움이 되었음은 물론입니다.

하지만 단점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스당의 패배 이후 가믈랭이 언급한, "숫적 열세, 장비의 열세, 전술의 열세"에서 숫적 열세, 장비의 열세는 사실이 아니었음을 밝히는 과정에서 조금 억지스러운 부분이 있습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독일군의 장비는 연합군과 동등하거나 약간의 열세 수준이었는데도 장비의 절대적 열세..로 보일 수 있는 분석은 조금 문제가 된다고 봅니다. 그러나 이러한 단점을 감안해도 전반적인 가치만으로 판정하라면 군사사에 관심있으신 분에게는 절대적으로 추천할만한 저작입니다. 한 마디로 "이 책을 읽어보지 않은 자, 감히 1940년 프랑스 전역을 논하지 말라!"... 수준의 저작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인상대로 이 책이 남긴 반향이 꽤 컸는지 2003년 3월에는 일본의 中央公論新社에서 "電撃戦という幻(전격전이라는 환상)"(상권), (하권)이라는 제목으로 일본어판이, 2005년 10월에는 미국의 Naval Intitute Press에서 Blitzkrieg legend: The 1940 Campaign in the West라는 제목으로 영문판이 나왔습니다. 비교와 보충을 위해 지른 영문판이 도착하고 내용에 대한 전반적인 그림이 머릿속에서 그려질 무렵인 2006년 초반, 일조각에서 한국어판이 나온다는 소식이 들렸습니다. 반가운 마음도 들었습니다만 그걸 번역하는 사람이 현역 군인이라고 하더군요. 그 때문에 한편으론 번역의 퀄리티에 대한 일말의 우려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해가 바뀌고 책을 보았습니다.

걱정한 것보다는 번역문이 매끄럽고, 특별한 전문용어를 제외하면 눈에 띄는 오류를 찾기가 힘들었습니다. 굳이 문제삼고 싶은 표현이라면 173페이지부터 등장하는 클라이스트 기갑군이란 표현입니다. 정확한 표현은 클라이스트 기갑집단이고, 이후 내용은 이 클라이스트 기갑집단이 기갑군으로 인정받지 못했기 때문에 벌어지는 문제들을 다루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후 전개될 내용과 상치되는 표현인 클라이스트 기갑군으로 쓴 것이 조금 아쉽더군요.

또 하나 문제삼을 만한 것은 표지입니다. 퀄리티는 매우 고급스럽습니다만 이 시기에 쓰이지 않은 장포신형 4호전차가 표지를 차지한 것은 다소 아쉽습니다. 책의 내용에 맞게 초기형 4호전차가 나왔거나 슈투카가 나왔으면 어떨까 싶은 아쉬움이 있네요.

그외 눈에 띄는 단점이라면 38,000원에 달하는 가격이겠습니다. 다소 비싸게 생각되긴 합니다만 독일어판을 구하려면 42 유로, 영문판으로는 (아마존 할인을 걸고) 42달러가 소요되니 한글로 된 이 책을 구매하는 것이 경제적으로도 이득이겠습니다.

아울러 한국의 실정에서 또 하나 우려되는 것이 있습니다. 국내에선 기존의 시각을 잘 정리한 서부전역 전사책이 없었기 때문에 이 책으로 깰 수 있는 기존의 통념조차 형성되지 않은 척박한 환경입니다. 문제조차 제시되지 않은 환경에서 해답이 나와 버린 상황이랄까요? 때문에 이 저작이 가진, 역사적 군사사적 심도를 알아보기가 쉽지 않을 거 같다는 우려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어찌 이 책이 책임질 일이겠습니까? 결론적으로 별 다섯에 다섯개를 주고 싶은 절대적으로 강력히 추천할만한 저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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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차르트 - 전4권 세트 크리스티앙 자크 지음, 성귀수 옮김/문학동네

맨 처음 접했던 크리스티앙 자크의 책은 1997년 말 이집트의 파라오, 람세스 2세의 일대기, 람세스다. 아버지이자 굳건한 파라오인 세티를 만나는 광경으로 시작한 이 저작은 고대 이집트를 배경으로 세티의 배우자이자 현명한 어머니로 한 점 꿀림이 없었던 이집트 왕비 투야, 우정으로 람세스를 도왔던 그의 친구들, 아메니, 아샤, 셰타우, 모세, 그리고 람세스의 여인들 이제트와 네페르타리, 그리고 람세스의 적으로 등장했던 여러 인물들 - 람세스의 교만한 형 셰나르와 누나 돌란테, 히타이트왕 하투실, 그 왕비 푸투헤파. 그렇게 람세스가 만난 실존한 인물과 가공의 인물들이 교차하며 각자의 매력과 개성을 뽐내고, 그 속에서 람세스의 재능을 성장시키는 세티의 가르침과 그 가르침을 바탕으로 성장하여 왕자로, 서기관으로, 장교로, 섭정공을 거쳐 파라오로 성장하여 마침내 이집트와 파라오를 넘어서 적조차 감탄시키는 전설이 되어버린 이집트의 황금 시대를 만든 람세스 2세의 발자취가 만화경처럼 눈 앞에 선연히 펼쳐지는 것 같은 문자의 매력을 부정할 수 있는 자가 과연 얼마나 되었을까?

물론 글로 보여진 람세스의 모습이 역사 그대로는 아니었으리라. 당시 이집트의 모습이 글에 그려졌던 천국이나 축제의 낙원도 아니었으리라... 하지만 읽는 사람을 감동으로 이끌고, 비록 한 때에 지나지 않았다 해도 이 동쪽 구석의 나라에 이집트 열풍을 만들어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그 뒤로도 크리스티앙 자크는 3천년전 고대 이집트를 배경으로 재능을 갖고 있던 인물들이 그 속에서 성장하고 자라며 달인이 되는 이야기(빛의 돌)를, 혹은 왕조의 교체속에서 갈등하고 부딪히며 끝내 꺾이지만 기억에 남는 인물의 이야기(태양의 여왕)를 써내며 이렇게 이집트를, 이집트 문명을 한국인들의 기억속에 심어왔다.

그러했던 크리스티앙 자크가 들고 나온 새로운 소설의 테제는 천재음악가 볼프강 아마데우스(고트프리) 모차르트다. 글의 무대도 크리스티앙 자크가 주로 쓰던 고대 이집트에서 3천년의 시간을 뛰어넘은 근세의 유럽을 그 무대로 하고 있다. 아마도 크리스티앙 자크가 모티브를 얻은 것은 모차르트의 마지막 대작 오페라, Die Zauberfloete(魔笛:마술피리)의 파격일 것이다. 이전의 다른 오페라에 비해 비기독교적 색채가 강한 이 오페라는 모차르트가 프리메이슨이었다는 증거로 인용되기도 하는데 크리스티앙 자크도 그 부분에 촛점을 맞춘 듯 하다. 보다 명확히 말하자면 모차르트의 예술적 천재성은 그 자신의 천재성을 바탕으로 아버지인 레오폴트의 교육에 못지 않게 고대 이집트의 비전에 영향을 받았다는 것이 크리스티앙 자크의 주장이다.

소설은 모차르트의 삶을 날짜별로 추적해나가며, 몇 날 몇 시에 그가 무엇에서 영감을 받아 어떤 음악을 작곡했으며, 그의 여정이 어떠했는지를 꼼꼼히 기록해 나간다. 동시에 토트의 서, 연금술의 궁극을 배우고 이집트의 헤르메스 수도원에서 탈출, 대마법사를 찾아내라는 사명을 받은 이집트인 타모세가 모차르트를 이끌고 프리메이슨으로 이끄는 과정을, 그리고 이집트의 비전에 빠져든 모차르트가 세상을 깨우는 천재적인 음악을 만들어내는 과정을 기술해간다.

하지만 이 책은 불행히도 모차르트에 대해 전혀 모르는 초보자가 읽기엔 그다지 바람직하지 않다. 다시 말해 모차르트와 그의 음악들에 대해 어느 정도의 지식을 갖고 있는 독자에겐 어느 음악이 어떤 의도에서 만들어졌다는 것을, 그것이 이집트 비전의 영향을 받았던 것인가...라고 회상하며 즐길 수 있지만 모차르트의 음악에 대해 전혀 알고 있지 못한 사람에겐 좀 딱딱하다. 이는 아마도 모차르트가 너무나 유명한, 교과서를 시작으로 워낙 많이 접하지만 그 정보만으로는 모차르트를 파악하기 어렵다는 것을 상기해보자. 더욱이 모차르트의 모습을 강렬하게 정형화한 미디어가 있다. 아마도 1984년에 개봉된 영화,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다. 그 원작인 섀퍼의 연극에서 그려졌던 대로 경박하고 꾸밈없는, 동시에 순진한, 뭐랄까 자기만의 세상속에 빠져있는 천재의 전형적인 모습으로 그려진 모차르트 말이다. 하지만 크리스티앙 자크의 책은 경박한 천재라는 모차르트에 대한 선입견과 달리 깊이 있고 노력하는 모습이 보이는, 즉 달인으로 성장해가는 모습을 보이는 모차르트를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문제가 있다.

또 하나의 문제점은 크리스티앙 자크가 일대기 형태의 성장 이야기를 잘 쓴다는 점에 있다. 성장하는 이야기를 마주친 독자, 혹은 청자는 다음 두가지를 기대한다. 대상의 천재성을 발견한 이전 세대의 누군가에 의해 그 천재성이 개화되도록 교육받고, 그 교육속에서 노력하며 한계와 편견을 극복하여 마침내 스스로의 능력으로 세상을 이끄는 그런 존재로 성장하는 모습을 기대한다. 하지만 이런 스토리가 어울리지 않는, 비록 그의 음악은 시대를 뛰어넘어 지금까지, 그리고 앞으로도 살아남겠지만 현실의 질고를 벗어나지 못한 채 지독한 시기와 모략의 대상이 되어 버린 채 끝나버린 현실에서의 모차르트의 삶은 성장 스토리의 구도와는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다. 때문에 성장스토리적인 감동을 바랬던 독자에겐 카타르시스를 주지 못하는 이 소설이 굉장히 답답할 수 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모차르트에 대해 알고 싶은 사람이라면 한 번쯤 이 소설을 읽어볼 것을 권하고 싶다. 물론 나는 모차르트의 실체가 아마데우스에서 그려낸 경박한 천재였는지, 이 책에서 그려낸 대로 이집트 비전에 입문한 천재이자 달인이었는가에 대해 평가하지는 않겠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모차르트의 진실에 대한 또 하나의 가능성 높은 시각을 볼 수 있다는 것에는 충분한 의의가 있는 책이라 생각한다. 최소한 그가 처했던 삶의 상황이 어떤지에 대해서 생각해볼 기회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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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소 전쟁사 1941~1945 데이비드 M. 글랜츠,조너선 M. 하우스 지음, 윤시원.남창우.권도승 옮김/열린책들
 
최근 열린책들에서 "독소전쟁사 1941-1945"라는 이름으로 "When Titans Clashed"의 번역서가 발매되었습니다. 원본인 "When Titans Clashed"는 소련군에 관한 한 미국 최고의 권위자라 할 수 있는 David M. Glantz(데이빗 M. 글랜츠) 예비역 대령과 조너선 하우스 교수가 쓴 책으로 2차대전 당시의 독-소 전쟁 그 자체에 촛점을 두어 기술한 책입니다.

저자인 David M. Glantz 예비역 대령은 미 육군의 외국군연구소(FMSO:Foreign Military Studies Office) 소장을 역임하며 소련군과 제2차세계대전 당시의 독-소전쟁에 관한 많은 연구성과를 선보였습니다. From the Done to the Dnepr: Soviet Offensive Operations, December 1942-August 1943를 시작으로 한 그의 저작들은 대조국전쟁사를 중심으로 이미 오류로 밝혀진 수십 년 전 자료를 무비판적으로 인용하거나 사료적 근거가 명확하지 않은 전쟁사 서적들의 문구를 단순히 조합하던 서방측 연구자들의 당시 저작들과 달리, 일반 연구자들이 자료 접근에 한계를 갖던 구 소련군 내부 자료를 바탕으로 독-소전쟁의 모습을 재조명하는 계기를 만들어줬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번에 번역된 "When Titans Clashed"는 "How the Red Army Stopped Hitler"라는 부제에 걸맞게 독-소전을 개괄적으로 잘 설명한 저작입니다. 독-소전에 대한 최초의 쓸만한 서방측 저작으로는 John Erickson 교수의 "Road to Stalingrad""Road to Berlin"을 꼽을 수 있으나 조금 산만한 서술로 인해 읽기가 좀 어렵습니다. 이에 비해 "When Titans Clashed"는 "Road to Stalingrad"와 "Road to Berlin"의 각주 노트이자 정리서라는 저자의 말대로 내용의 심도가 떨어지지 않으면서도 각 챕터마다 놓여진 상황도, 잘 정리된 여러가지 데이터, 용어해설등이 붙어 있어 한 권으로 독소전을 이해하려는 분들에게 있어 현재까진 최고의 책이라고 감히 말할만 합니다.

물론 단점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소련측 시각을 바탕으로 한 접근은 발간 당시엔 매우 참신한 시도였으나 좀 더 많은 자료가 공개된 지금의 시점에서 보자면 친소련적인 서술에 기인한 오류가 보이기도 한다는 점이 문제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내에 나온 2차대전 관련서중 유일하게 독-소 전쟁, 그 자체를 다루고 있는 저작이란 점에서 이 책의 가치를 높이 살 만한 이유는 충분합니다. (리처드 오버리의 "스탈린과 히틀러의 전쟁도 이 책과 마찬가지로 독-소전을 다루고 있으나 전쟁 그 자체에 대한 서술은 사실상 오류에 가깝다 봐도 무방할 지경입니다.)

특히 한국어판을 높게 평가할만한 이유는 기존 번역서들의 역자들이 배경지식의 부족으로 원서를 우리말로 옮기는데 그치는 데 비해 제2차세계대전 유럽전선에 대해 많은 배경지식과 경험을 가진 분들, (페리스코프와 다음 WW2 카페에서 Wenck라는 필명으로 활동했던)남창우님이나 (페리스코프에서 길잃은어린양이란 필명으로 활동했던) 윤시원님 및 (페리스코프에서 다스라이히라는 필명으로 활동했던) 권도승님이 번역을 맡고 국내 최고의 2차대전사 사이트, 페리스코프의 주인장인 채마왕님이 감수를 맡아 원본의 오류들까지도 적절히 지적해줬다는 데 있습니다.

독소전의 실체에 대해 관심이 있는 많은 분들은 망설이지 마시고 과감히 집어드셔도 결코 후회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 책이 번역된 것을 기회로 앞으로 제2차 세계대전에 대한 객관적인 저작들이 좀 더 많이 번역되고, 쓰여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p.s... 사실 책의 디자인 자체는 영문판의 강렬한 맛이 사라져서 다소 아쉽습니다.

Posted by 우마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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